'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98건
- 2020.09.15 어쩌다가 사랑을 선택하다
- 2020.08.15 프레임 벗어나기
- 2020.08.13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 2020.08.12 같이 모색하다
- 2020.08.11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 2020.08.10 Z차원의 사랑
- 2020.08.07 마음의 울림을 따라...
- 2020.08.06 인터넷은 가상이고, 고양이는 현실이다
가을 아침 처음 내린 커피 향내로 방 안 가득 안락함이 몰려듭니다. 창으로 밀려들어오는 파란 바람이 좋습니다. 가을 시작을 알리면서 생일을 맞는 나를 위해 몇 해 전부터 세 명의 애인이 책을 한 아름 선물로 보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 책과 더불어 가을을 맞이하면서 웃음지으며 처음 고른 책을 열고 몇 자 적어놓으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이라는 책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어른이기에 그런가요.
이 책의 주인공, 십 대 소녀 조반나가 성장해가면서 알아가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사랑으로 저질러진 선택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처음 한 그 선택이 주는 어른들의 삶은 알 수 없는 미로처럼 혼란을 줍니다.
십 대의 눈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벅찬 진실이 삶에 그럭저럭 묻혀 지나오다니. 믿기 힘든 일을 결국에는 인정하며 받아들이려 합니다. 성장하면서 겪는 통과의례라고 제목 짓고 말이죠.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파열음은 다양하게 소리를 내면서 터져 나옵니다. 나는 나대로 가족들은 그들나름대로 아우성을 치게 마련이죠.
이제는 감히 사랑한다고 말 하기 어려운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나는 삶이라도 내 마음 한 구석 눌어붙은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게 삶이 건네는 딜레마일 겁니다.
그저 내 곁에 있는 사람과 관계가 주는 구속일 수도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 개인의 선택은 불가항력은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네요. 숙명론을 믿지 않는 제가 어쩐지 숙명처럼 받아들인 순간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한국인이기에 작동되는 문화유전자 밈이라고 설명해도 될 것 같기는 해요.
삶은 그토록 번잡하게 다가와 소용돌이치고 서서히 썰물처럼 내 마음을 슬그머니 가져가 버리나 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만큼 평생을 서성이게 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요.
이탈리아라는 사회 배경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과 다릅니다. 제게 이탈리아는 주로 영화를 통해 그들이 누리는 삶의 열정과 사랑에 얹어진 낭만을 자연의 모습으로 전해주고는 했어요.
그 어느 곳에서 살아간다해도 사랑은 그저 사랑이지요. 다만 어떤 사랑을 선택하는지는 결국 나의 몫이었습니다. 결혼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닌데도 결혼을 전제로 뭇 어른처럼 삶을 이끌어가야 했나 봅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 문장처럼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이 있을까요. 성장통을 치르고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환상처럼 삶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통증을 느낍니다.
거짓된 삶을 살아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작은 위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건넨 삶의 욕망들은 대체로 다 엉터리였다고요. 나는 그 어른으로 살아가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썼나 봅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려 무진 애쓰는 그대를 위한 내 사랑으로 위로를 보냅니다.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언가.. 답을 찾고 있는 그대에게 (0) | 2020.11.16 |
---|---|
재능을 외면한 대가 (0) | 2020.10.10 |
프레임 벗어나기 (0) | 2020.08.15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 2020.08.13 |
같이 모색하다 (0) | 2020.08.12 |
세상이 어찌 돌아가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것만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
2021년 대입 수능은 코로나 19로 인해 12월 3일로 변경되었죠. 일상에서 온전하게 개인의 의지로 살아내기 어렵네요. 그럼에도 알 것은 알고 살고 싶어요. 그래야 내 선택이 유효할 테니까요.
뉴스 프레임 밖에 '진실'이 있습니다.
가짜 뉴스의 홍수 속
진짜를 가려내는 뉴스 독법
대한민국 고3 수능생에게 주어진 '수능 이후'는 인생에서 무엇일까? 개인의 선택이든 외부의 종용이든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최선의 선택은 역시나 다수가 선택해야만 하는 대학 진학인가 봅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수업 일수는 채워야 하고 학생들은 딱히 할 일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이십 명 남짓 모인 공간에서 영화를 봅니다. 두 해 전 선택한 영화는 <더 포스트> 였지요.
같은 영화라 해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현재 내가 관심을 두는 시선에 따라 다르지요. 고3 교실 안 풍경을 보면 영화는 진행 중인데 열다섯 명 정도는 휴대폰과 눈 맞춘 상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과 눈 맞추는 일이 더 좋은 것이겠거니.. 영화에 관심이 없구나.. 등등.
이런 상황에서 말을 아끼려고 노력합니다. 분명 잔소리로 들릴 것만 같아서 영화를 같이 본 후 고 3 친구들에게 이 책을 열고 한 줄 문장을 읽어 줍니다.
가짜 뉴스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우리 사이를 파고든다.
뉴미디어 시대 저널리스트의 역할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들 사이에 믿음이 있다면... 그야말로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결국 현대인들의 고뇌는 정보 파악부터 스스로 해낼 힘이 부치는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힘이 부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다음은 순조롭죠. 오히려.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아도 세상 사는데 그다지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으니까요. 그냥 숨 쉬며 사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생명체로써.
어느새 내가 이 세상에 휘둘리는 시간이 늘어난 순간을 마주하고 씁쓸하게 웃으면 그만입니다. 허덕거리는 내가 움직일 힘이 모두 소진된 후에. 굳이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이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세계가 이 세계의 움직임에 따라 자극받고 위로받기도 하거든요.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나의 세계는 고립으로 무장하게 되겠지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공동체의 건강함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요. 이 책은 뉴스로 도배되는 세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를 말합니다. 물론 중심이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나를 지키려는 중심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갈 행위에 달려있기에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일부터. 감각을 부추기며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보이는 뉴미디어 시대에서 중심 잡은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능을 외면한 대가 (0) | 2020.10.10 |
---|---|
어쩌다가 사랑을 선택하다 (0) | 2020.09.15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 2020.08.13 |
같이 모색하다 (0) | 2020.08.12 |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 2020.08.11 |
이 책을 읽고 글을 쓴 후 4년이 됩니다. 지난 글들을 이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책에 관한 글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작업이죠.
'책방, 눈 맞추다'는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중이고요. 언제까지일까.. 잘 모릅니다. 다만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가며 삶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정치가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합니다. 문제는 대통령 한 사람으로는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는 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사회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결국 시민입니다. 시민의식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치력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죠. 너무 더디게 지나는 사회제도에서 결국 희생은 다수의 시민이 감당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기에 개인이 스스로 삶을 변화하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희생으로 사회를 유지한다는 일은 끔찍한 세월아니었나요... 내 문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고통이 삶을 어지럽게 하니까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이라면 살아있음에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질 것 같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개인이 이루어낼 때 일권리에 합당한 판단이 가능하겠지요.
한 번 읽어보시죠. 2016년 박근혜정부 시절...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 것도 같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언론플레이로 혼란스러우니까요.
당신의 정치 철학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선거 때면 내거는 공약은 지키기보다는 이기기 위한 정치전략으로 있다.
순간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쉽게 저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생기는 정치 무관심은 아니었을까. 2012년 12월 19일 이후, 큼직한 사건 사고가 넘치는 가운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는 강대국의 힘겨루기를 위해 사드를 선택했다.
현 대통령의 치고 빠지기를 전략으로 말하기도 뭐하다. 여론이나 합의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갑작스러운 논란거리 하나 던져놓고 훌쩍 외유를 한다. 비교하는 거 안 하는 편인데 이 책을 보는 순간 겹치는 직함이 있어 별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가 보여준 삶은 특별하다. 그의 표정은 친근한 이웃이 웃으며 건네는 인사다.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이 세계를 잠시 황홀경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마음껏 상상하게 한다. 이 세계에 남길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선물했다.
그는 결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대통령이었다. 그의 평전을 읽어 보면 그의 삶이 보여주는 진정한 가치와 정치 철학이 고스란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왜 우리에겐 이런 지도자가 없는가?
영적 지도자로서 교황 프란체스코는 현 존재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는다. 호세 무히카는 현대인에게 일상의 지도자라 하면 적절할까. '위대하다'라는 말보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에 좋은 정치가 이 사회를 바꾸는데 가장 빠른 선택의 길이라는 믿음이 저절로 생긴다.
리더십의 빈곤함에 찌든 한국사회에서 그의 삶을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지도층들이 많아진다면, 잘못된 사회구조로 발생하는 불안과 좌절이 줄어들 변화의 가능성은 분명하다. 굳이 선거 전략, 정치 전략이라 떠들지 않아도 말이다. 푸념 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 소수이지만 그런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 줄 대중의 움직임도 필수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보통사람이 일하며 사는 거리, 사회의 시선이 쉽게 외면당하는 현장으로 발걸음을 향한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정치인의 신념으로 움직이고 정치적 사명감을 다하려는 이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안방에 앉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는 없다. 오히려 안방의 텔레비전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막아 왜곡된 정보를 쏟아낸다.
저널리즘이 실종된 나라, 그렇다고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언론 환경, 진보의 분열 따위로 투덜거리는 일도 할 만큼 했다. 이 망국으로 가는 역사의 혼란한 시간을 멈추게 할 힘이 있어야 하고, 정치만큼이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개인들도 그 책임을 함께 지고 가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호세 무히카는 그의 평전에서 말한다.
“하나의 일관된 전략이 없으면, 그 집단은 살 수도 없고 숨 쉴 수도 없다.”
전략은 적중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전략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 명의 리더십이 작동될 수 없다면 진보의 결집이 필요하고 그것이 전략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혁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총과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이란 사고의 전환이다. 유교나 기독교도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투쟁에는 후퇴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힘을 유지한다는 것은 후퇴했다가 다시 모으고 조직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나간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호세 무히카의 말은 한국사회에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선거의 결과에 따른 치밀하고 비전의 어젠다를 재창출할 수 있는 전략가들이 힘을 합쳐야만 한다. 계파의 늪에서 언제까지 허우적거리며 책임 전가를 하려는 것일까. 현실의 벽 앞에 언제까지 무릎을 꿇고 국가의 미래를 팔아먹는 행태에 손가락질만 할 것인지 답답하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자신의 급여 대부분의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지만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우루과이는 현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퇴임 당시 무히카 대통령 지지율은 당선 때(52%) 보다 훨씬 높은 65%였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없는 가난한 대통령이지만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제 상원의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망각 속에서 공화국의 정신은 왜곡되고 붕괴하여 가고 있습니다. 공화국들은 봉건적 향수 때문인지 혹은 소비주의 문화 때문인지 ‘부유하게 살기’를 그들이 나아갈 방향으로 수용했고, 보통사람들의 삶과 꿈, 생활의 요구들을 외면해버렸습니다. 정부는 결국 자기 국민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동시대를 살고 있는데 정반대의 철학과 행동을 보여주는 대통령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 그 현실의 한계는 무엇일까.
그의 말대로 한 사회의 실패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정치가 실패하는 것은 삶을 부의 축적보다 우위에 두는 철학적 시야가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을 새겨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적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론이 편향적으로 알려주는 상황에서 알 권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정부의 정책 결정을 보면서 광장을 외면해야 할까?
유권자의 절반이 선택한 지도자가 제 길을 걷지 않는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이 물음표들이 느낌표가 될 수 있는 행위가 필요하다. 역사의 진보가 한국 사회를 비껴가도록 우리가 길을 내어 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2016.09.01. 글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가 사랑을 선택하다 (0) | 2020.09.15 |
---|---|
프레임 벗어나기 (0) | 2020.08.15 |
같이 모색하다 (0) | 2020.08.12 |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 2020.08.11 |
Z차원의 사랑 (0) | 2020.08.10 |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대중화로 다양한 목소리가 논쟁과 갈등을 지나고 있다는 프롤로그부터 사실은 의아합니다. 대중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대중에도 세대 구분이 확실한 것 같거든요.
이제 팬데믹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저자들은 공론장의 기능을 모색합니다. 다양하게 접근한 13편의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대개는 느낌표로 작동을 하네요.
목차를 읽다 보면 한국사회에 위치한 '여성'과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만납니다. 페미니즘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에는 어떤 가치가 투영되어 있는가? 나는 그 가치를 공감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현재 가장 뼈저리게 만나는 것은 '언어 결핍'입니다.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가 놓인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영어 실력을 최우선으로 두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말로 표현하는 능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를 사용해 표현하는 일이 더 쉽게 일상을 이끌어갑니다. 특히 SNS에서 자주 사용하는 축약어의 문제, 책읽기보다는 요약에 분석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문장의 맥락은 쉽게 지나치거나 사라집니다.
어떤 표현을 해야 대상을 향한 내 마음이 적절하게 그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지. 내 방식이 통하는지 잘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말로 생각을 드러내다 보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해서 내 문제인가 싶어지기도 하죠.
국어 사용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뉴미디어시대에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 한가운데 '페미니즘'이 있습니다. 문제 의식 없이 사회학습을 통해 사용해 오던 언어의 부작용을 거두어낼 변화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낙인처럼 요지부동한 언어 학습에서 벗어날 방법은 교육이죠. 그 교육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한반복되는 시대착오. 시대정신을 알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힌 말로 잘못 사용하게 되어 소통을 방해합니다.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은 개인주의가 정체되어 이기주의를 둘러싼 행복하기를 욕망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안위만을 원할 때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죠.
세 번째는 과연 몇 명이 이 책을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현실의 문제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이 책을 만날 확률은? 글쎄요... 기대하지 않고 있답니다.
이쯤이면 책을 읽고 알아가는 현실과 내가 놓인 현실과 도대체 평행 우주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글쓰기가 피곤해진다는 점입니다.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레임 벗어나기 (0) | 2020.08.15 |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 2020.08.13 |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 2020.08.11 |
Z차원의 사랑 (0) | 2020.08.10 |
마음의 울림을 따라... (0) | 2020.08.07 |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었어요.
이 책을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근원적이고 인격의 계발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저서는 드물다. 인간이 자신의 전인격을 계발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랑도 역시 하나의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하죠.
오히려 이 책은, 사랑이란 자신이 얼마나 성숙했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써졌다.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확신시켜 주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즉 저마다의 개인적인 사랑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이는, 그리고 진정한 겸손과 용기, 신념과 철저한 훈련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장. 사랑에 관한 이론
개인이든 인류이든 간에 인간은 일단 태어나게 되면, 본능처럼 철저하게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추방된다. 확실한 것은 오직 과거에 대해서뿐이고, 미래에 대해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본문 중-
이창우가 배운 "사랑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무지개 사랑학’은 무지개의 일곱 가지 사랑으로 세상을 희망과 행복이 가능한 모두의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한 개인의 당당한 사랑이다.
빨강 사랑은 나를 나답게 만든 나를 향한 마음이다. 주황 사랑은 온유한 사랑이다. 내 주변에서 시작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다. 노랑 사랑은 이기적인 마음, 가족, 나의 그대, 나만의 님을 향한 희망과 설렘이다. 초록은 사회를 향한 사랑이다. 개인주의가 굳건하게 만들어진 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사회를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
파랑 사랑은 평정을 의미한다. 사랑은 치명적이다. 그것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마음이다. 남색은 지식을 향한 사랑이다. 평생 공부를 벗 삼아 공부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이다.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이 만났을 때 가능한 사랑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한 사랑이기도 하고 그래서 무로 돌아가는 ‘0’의 의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대상을 향한 희망이 실현되는 사랑이기도 하다.
3장. 현대 서양 사회에서의 사랑의 붕괴
4장. 사랑의 실천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고, 이렇게 만든 데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예외적인 개인적 현상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신념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통찰에 기초하고 있는 합리적 신념이다.
-본문 중에서-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 2020.08.13 |
---|---|
같이 모색하다 (0) | 2020.08.12 |
Z차원의 사랑 (0) | 2020.08.10 |
마음의 울림을 따라... (0) | 2020.08.07 |
인터넷은 가상이고, 고양이는 현실이다 (0) | 2020.08.06 |
지난주는 책을 왕성하게 읽어댄 주였습니다. 새봄부터는 스터디를 하기로 해서 동양사와 페미니즘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 책 읽기는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상영되었죠. 1995년 미국 작품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은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였어요.
요즘 명작 재개봉이 자주 있는데 이 작품도 2017년 4월에 재개봉 예정입니다. 더 신나는 것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 뮤지컬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충무아트센터에서 초연 예매 중이더군요.
한국의 첫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킨케이드’는 옥주현과 박은태라고 합니다. 시대극 중심의 국내 대극장 뮤지컬 중 현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드물기에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주제로 제 2의 러브스토리로 평가받은 소설이기도 하죠. 제 1의 러브스토리 는 1971년 작품의 <러브스토리>라고 하더군요. 아서 힐러 감독, 알리 맥그로우와 라이언 오닐이 주연이었습니다. 영화 OST는 눈 내리는 겨울엔 거리에서 쉽게 지금까지도 들립니다. 백혈병이 대거 등장하는 시대가 열리기도 한 이야기지만요.
아주 유명한 대사가 아직까지 연애 중에 쓰이죠. 드물지만 오랜 시간 연애하는 사이에선 충분히 나눌 이야기이긴 하죠.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에요.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 are sorry)
사랑이란 삶의 여정에 새겨지는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Love.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인데 우리말은 표현에서도 다양한 편이죠.
우리말 ‘사랑’은 귀하게 여기어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감정.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해요. 그와 비슷하게 또는 애매하게 쓰는 말이 있죠. 한자어로 情이란 말.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내지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유학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그들 일상 속에서 정을 따로 가꾸고 의식하고 또 기술(記述)해 왔다. 낱말 자체는 중국 한자에서 수용한 것이지만, 그 외연이며 내포는 한국인의 인간론적·사회적 그리고 생태적인 개성까지를 반영해온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랑은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사랑한 대상을 아끼고 최선을 다하게 만들어 주는 안 보이는 힘이기도 합니다. Z차원의 사랑이 가슴을 꿈틀거리게 하던 순간은 아름답습니다.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세요.
-2017.03.12 글.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이 모색하다 (0) | 2020.08.12 |
---|---|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 2020.08.11 |
마음의 울림을 따라... (0) | 2020.08.07 |
인터넷은 가상이고, 고양이는 현실이다 (0) | 2020.08.06 |
문학은 자유입니다 (0) | 2020.08.03 |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 말 앞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인들의 감각에 의해 진실이 가볍게 무시되는 경우가 일상생활에는 숱하지요.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범람하면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편한 진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는 점입니다.
로이스 로리는 이 작품에서 진실의 힘을 향한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희망을 건넵니다. 진실은 그 자체로서 도덕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 극단적인 엄격성을 요구하지는 않아요.
심각한 경우는 바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고의를 전제하는 거짓말이라 하겠지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이유에서이지 논리적 이유에서가 아니거든요.
도덕이나 윤리는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강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씌어진 굴레가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면서 기쁨과 행복을 얻는 것이 도덕적인 삶을 선택하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비도덕적인 상황에서는 누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스스로 자유롭게 그것을 충실히 누릴 수 있는 책임감을 행하면서 만나는 기쁨이며 행복인 것이겠지요.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진실은 정신을 때로 교란시키기도 합니다. 불행히도 말의 의미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되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진리를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공동체의 진실을 향해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언제나 할 말이 넘칩니다.
<기억전달자>에서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은 완벽한 사회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사랑이나 우정, 인간적인 감정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있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분란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사회이니까요.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를 받은 조너스는 진실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의 기억은 환상에 가리워진 조작된 현실이었기 때문이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한국사회는 인간적인 감정을 제거하려 합니다. 국가의 묵인에 6주기를 지난 4.16 세월호 참사에서 가라앉은 자들로 내 중심은 고통스럽습니다.
진실을 찾아 내고 이를 전달하기 위하여 과연 인류의 역사는 궁극의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현실에서 진실은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몽롱한 환상을 보여 주기도 해요.
완벽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불편한 진실로 치부되는 현실은 그런 미래와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억전달자들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거두어낼 소수의 기억 전달자들이 고귀한 감정과 진실을 향한 마음의 울림을 따라왔습니다.
인류는 보다 인간답게 살아갈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갈망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교묘하게 만들어 준 환상은 우리의 정신적인 심리 작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예를 들면 ‘사회악’에 해당되거나 ‘필요악’에 자행되는 일련의 행동들이죠. 그래서 환상은 보통의 인간 관계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를 주변 환경에 순응하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현실은 사실과는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허위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으니까요. 사회학습에 길들여져 진실을 안다해도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럴싸하게 타협을 내세워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그러나 사회를 이끄는 권력이 주입한 그 환상에는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나온 역사에서 강자의 논리로 저질러진 거짓의 환상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거죠.
진실을 숨기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앎’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해 왔던 것은 나의 망각이라는 점도 자각해야 하고요. 진실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차단시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신화 주입이 큰 역할을 하죠.
사회를 좀먹고 변질시키는 데 역할을 하는 허위 욕망이 나를 진실과 멀어지게 합니다. 살아있는 자들은 기억 전달자로 그 책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사회처럼 진실을 체계적으로 은폐하며, 지속적으로 회피하도록 사회적 압박과 조작을 해 온 상황에서 출몰하는 현상들은 개인들의 정체성마저 뒤흔들어 왔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현실에 잘 적응한다는 이유로, 또는 ‘무지(無知)’를 내걸어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은 사회악을 당연시하게 만들거든요. 진실에 대한 갈구는 곧 자유와 해방의 획득과도 상통하는 일입니다.
그와 반대로 환상은 정신적인 노예 상태를 지속시킬 뿐이죠. 인간다움을 찾아 저항하고 도전하는 용기만이 진실을 지켜낼 힘임을 로이스 로리는 여전히 깨닫게 해주고 있네요.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 2020.08.11 |
---|---|
Z차원의 사랑 (0) | 2020.08.10 |
인터넷은 가상이고, 고양이는 현실이다 (0) | 2020.08.06 |
문학은 자유입니다 (0) | 2020.08.03 |
무디어지다 (0) | 2020.08.03 |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뜻밖의 선물로 책 한 권을 벗에게서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같아요. 그 순간은 세월이 지나도 건네는 힘이 있는데 작은 설레임을 닮은 사랑받는 느낌일 지도 모르겠어요.
무심코 책장을 열면 벗의 손글씨가 묘하게 살아 움직이는 거죠. 야금야금 읽어야지.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발견해 단숨에 읽게 되는 책이 되었답니다.
고양이 우리씨와 살고 있는 내게 벗을 대신해 서가에 놓여있는 그의 존재감. 벗이 나타났던 그 순간과 그날의 따스했던 이야기들까지 흐릿하게 다가오지만 느낌은 아주 강렬해요.
길고양이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 책의 주인공이 고양이의 방문을 어느새 기다리게 되고 이름까지 건네게 됩니다. 고양이 '시빌'과 사랑의 아픔을 나누게 되는 주인공은 11년 간 같이 살아온 남자와 이별하게 됩니다.
그후 고양이 시빌에게서 배우게 되는 삶이 느긋해지면서 찾아오는기쁨을 실천하면서 지나온 시간보다 더 활기차게 일상을 만들어 가죠. 주인공은 드디어 나누는 삶에서 행복을 얻는 '고양이 전설'까지 창조하게 되고요.
살아가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관계는 어느날 갑자기 공백으로 다가 옵니다. 별로 공들이지 않아도 지속된 관계가 스르륵 무너져 내리는데 사실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던 거죠.
무감각하게 일상을 지탱하면서 습관적으로 계속되는 일상에 별 의문을 품지 않고 잘 적응한 것이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요. 사회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 잘 살아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요.
인간이 다른 생명체로부터 얻는 지혜는 뜻밖의 선물이며 행복이기도 합니다. 그저 내 곁에 남아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홀로 있는 내게 동반자의 힘을 느끼게 해주죠.
인터넷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일상이 된 현대사회에서 고양이는 현실입니다. 넘쳐나는 카카오톡 알림 숫자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면 하얀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살아있음을 실시간으로 깨닫게 해 주는 동반자로서 역할을 잘 합니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는 친근함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네요. 초록 식물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일과 비슷하긴 해요.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Z차원의 사랑 (0) | 2020.08.10 |
---|---|
마음의 울림을 따라... (0) | 2020.08.07 |
문학은 자유입니다 (0) | 2020.08.03 |
무디어지다 (0) | 2020.08.03 |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 (0) | 2020.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