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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14 어느 날 만나는 식탁에서 잠시...

어느 날 만나는 식탁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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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최재천  

나는 동반자 둘과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 사람이라 불리는 이안 씨와 고양이라 불리는 우리 씨입니다. 이 책을 만나 저자와 인연을 맺은 세월은 8년 정도이니 제법 길다면 깁니다.

 

세월에 입힌 숫자는 사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인연이 어느 한순간 짧은 만남을 만들어내기도 하나 봅니다. 지난 겨울 EBS 발견의 기쁨의 주인공이 되어 동네책방을 찾아 주었으니 그 정도의 우연도 지난 세월 이어진 끈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군요.

 

동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무서움을 넘을 수 있던 것은 그 동물과 동반자가 되면서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안 씨 덕분에 책방 고양이 우리 씨가 가족이 되었어요.

 

저자가 초대하는 식탁은 그동안 책을 읽어온 내게 적잖은 울림을 줍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만나기는 얼마나 힘이 들던가요. 그나마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려 애를 쓰지만 늘 내게로 오는 책은 극히 일부분일 테니까요.

 

아무래도 개인의 관심이 더 많이 가는 쪽으로 책은 선택되고 있으니 통섭의 풍성한 식탁은 누구든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 저도 저만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릴 기회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고 흥미를 끄는 책들이 12월 도서구입에 제목을 올리겠지요.

 

누구나에게 가능한 일이건만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늘 현실적으로 작동되고는 하나 봅니다. 저자가 보기 좋게 달아놓은 지식의 만찬에 들어갈 책 역시 자연과학 중심으로 만든 식탁이라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겠지요.

 

어느 분야로 접근하던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의 최종 선택은 자기 결정이면 충분하겠지요. 이 책을 통틀어 제가 읽은 책이 일곱 권 정도 되나 봅니다. 그것마저 기억에 남은 것은 미흡합니다. 한 문장 정도도 기억해내는 것은 없었어요.

 

서가를 둘러보고 누군가가 빌려가 돌아오지 못한 책은 다시 사서 읽어봐야지 합니다. 이런 기회로 지난 세월에 묻힌 책을 다시 만난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기는 합니다.

 

인간 중심의 사회가 당연시 되어온 인류에게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늘 말을 걸어왔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이기적인 생명체로 맹활약을 해온 인간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여전히 지속가능 세계는 불투명하겠지요.

 

생명존중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해보지만 역시나 불편하기 싫은 또 다른 내가 징징거립니다. 자기로부터 혁명은 시작된다고 여기지만 거의 모든 것의 변화가 가능하다고는 생각해 볼 수가 없어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머리속에서만 가능한 이 생각에 날개가 달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되거든요.

 

먼지처럼 나풀대다 어딘가에서 사라질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내고 이 땅을 떠날 수 있기를 다짐하게 만듭니다.

 

통섭의 식탁에서 나눌 지식의 만찬이 내 삶에 어떤 변화와 행동을 촉발할지는 받아들이는 개인마다 다를 겁니다. 별 생각 없이 살아온 인간 중심에서 조금은 생명체의 다양성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겠네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도 충분히 고단한 사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종끼리도 반복하고 있는 불협화음과 난무하는 야만성에 이기심까지. 자신을 지키기도 힘들지 않던가요. 살아가면서 만나는 불편한 진실에 허우적거리다 그것에 갇혀버릴 것만 같기도 합니다.

 

자연에게서 얻는 지혜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류가 진보를 내세우며 지나온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차고 넘칩니다. 결국 저자만큼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생명 존중과 자연을 품고 갈 수 있는 삶이면 좋겠구나 싶었어요.

 

다윈이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대로한 곳에서 잠시 밖에 머물지 않는 여행자의 묘사는 세밀한 관찰이기보다는 단순한 스케치에 그치고 만다.”는 이 문장이 인간으로 태어나 잠시 머물고 가는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될 뿐입니다.

 

생명의 탄생, 그 역사에서 한 점에 불과할 현재, 개미와 꿀벌의 세계에서 알아내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는 공동체의 힘을 생각합니다.

 

코로나19에 맞서고 있는 인류의 고단한 12월을 바라보며 오늘 마주하는 인간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다른 생명체에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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