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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0 재능을 외면한 대가

재능을 외면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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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친숙한 이야기는 이제 너무 익숙합니다. 그의 작품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관통하고는 하지요. 이 작품은 두 번째 희곡입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르나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저처럼 관심을 갖고 찾아내 접했을 것 같네요. 2인극으로 프랑스에서는 이미 상연된 '인간'입니다. 

 

개인적으로 남아있는 시간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는 못한 저로서는 의미심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마침 인연을 이어가고 있던 청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영혼의 저울을 상상해 보게 하네요. 

 

이십 대 절반 즈음 돌아보니 십 대 이어진 그 날 그 순간이 떠오른답니다.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고요. 내 삶의 여정에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죠.

 

이 작품에서 아나톨은 병원에서 수술 중 죽음을 맞아요. 의식하지 못하는 영혼 아나톨 역시 저처럼 그저 행운이라고 믿었던 삶이었다고 말해요. 베르나르는 영혼의 세계에서 변호사 역인 카롤린이 되어 이렇게 답합니다. 

 

 "행운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에 무지한 자들이 붙이는 이름이에요."

 

그래요. 나도 누군가에게서 이와 비슷한 느낌의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행운이라 말하고는 했던 일들은 그 이면에 그만큼의 노력과 고충과 인내, 기꺼이 내어준 마음들이 있다고요.

 

베르나르의 작품 전반에서 만나는 감정은 분명 허구인데 허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고 책장을 다 덮을 때까지 어리둥절한 확인 작업이 지속되고는 합니다. 

 

인간의 삶은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자유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간 후 탄생한다는 겁니다. 태어나는 순간 이 세 가지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베르나르의 세계에서 말이죠.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논증할 수 없으니 그렇거나 아니거나 개인에게 달린 문제겠죠 여전히.

 

『심판』은 이 세계의 다양한 종교관과 사상을 적절하게 작가 정신으로 연결해 놓았어요. 그러다 보니 베르나르의 작품은 아시아 세계관을 늘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학습한 세계관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거든요.

 

기독교 세계관과 이집트 신화, 불교의 가치에 중국사상의 접목까지 두루 만나게 되는 작품입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세계에서 판결은 대부분 환생입니다. 죽기 전까지 다 하지 못한 삶을 다시 살아내야 하늘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거죠.

 

과연 나는 자유의지로 살아왔는가? 되돌아 보면 여전히 자유의지만으로 되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하거든요. 어느 순간 자유의지라고 말하면서 이 사회와 타협해 온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어요. 

 

20대에 이름 앞에 따라 붙은 수식어는 '아나키스트'였죠. 대체로 정부의 존재를 거부했으니 그랬을 겁니다. 딱히 행동으로 옮긴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였으니까요. 행복한 개인주의자로 주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이십 대였죠. 

 

그 시기의 내가 있었기에 그 다음 이어지는 결혼 생활과 육아, 사회생활이 크게 일그러지지 않은 채 나를 지켜준 것일 테고요. 다시 홀로 걸어가는 지금에도 개인주의자로 이타주의를 내세우며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지켜내는 중이죠.

 

어느 날 영혼의 세계에 가게 되어 심판을 받는다면 저는 그곳에 남게 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네요. 아나톨처럼 행운으로 믿으며 그럭저럭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기에 환생하게 되겠죠. 그 순간 저는 자유의지보다는 위대한 작가의 카르마를 발전시켜 볼 기회를 잡고는 싶답니다. 

 

이 세계에서 모두를 조금은 덜 불행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가장 쉽게 마주할 일은 역시나 글쓰기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자유의지로 글쓰기를 해왔기에 이만큼일 테니까요.

 

이번 생은 이만큼에 만족하며 마무리하고 싶어요. 치열하지 못한 삶이 갑작스레 치열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것 같거든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순간이 그대들에게도 가능하면 좋겠어요.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살갗을 스칩니다. 한낮의 가을빛은 너무 맑고 찬란해서 나무와 꽃들이 춤을 춥니다. 덩달아 내 마음도 같이 신이 났어요. 황금빛 들판이 삶을 위안하는 계절, 마음껏 누리는 날들로 열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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