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8.15 프레임 벗어나기
  2. 2020.08.13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프레임 벗어나기

|

세상이 어찌 돌아가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것만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

2021년 대입 수능은 코로나 19로 인해 12월 3일로 변경되었죠. 일상에서 온전하게 개인의 의지로 살아내기 어렵네요. 그럼에도 알 것은 알고 살고 싶어요. 그래야 내 선택이 유효할 테니까요.

 

뉴스 프레임 밖에 '진실'이 있습니다.
가짜 뉴스의 홍수 속
진짜를 가려내는 뉴스 독법

 

 

대한민국 고3 수능생에게 주어진 '수능 이후'는 인생에서 무엇일까? 개인의 선택이든 외부의 종용이든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최선의 선택은 역시나 다수가 선택해야만 하는 대학 진학인가 봅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수업 일수는 채워야 하고 학생들은 딱히 할 일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이십 명 남짓 모인 공간에서 영화를 봅니다. 두 해 전 선택한 영화는 <더 포스트> 였지요.

 

같은 영화라 해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현재 내가 관심을 두는 시선에 따라 다르지요. 고3 교실 안 풍경을 보면 영화는 진행 중인데 열다섯 명 정도는 휴대폰과 눈 맞춘 상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과 눈 맞추는 일이 더 좋은 것이겠거니.. 영화에 관심이 없구나.. 등등.

 

이런 상황에서 말을 아끼려고 노력합니다. 분명 잔소리로 들릴 것만 같아서 영화를 같이 본 후 고 3  친구들에게 이 책을 열고 한 줄 문장을 읽어 줍니다.

 

가짜 뉴스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우리 사이를 파고든다.

 

뉴미디어 시대 저널리스트의 역할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들 사이에 믿음이 있다면... 그야말로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결국 현대인들의 고뇌는 정보 파악부터 스스로 해낼 힘이 부치는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힘이 부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다음은 순조롭죠. 오히려.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아도 세상 사는데 그다지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으니까요. 그냥 숨 쉬며 사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생명체로써.

 

어느새 내가 이 세상에 휘둘리는 시간이 늘어난 순간을 마주하고 씁쓸하게 웃으면 그만입니다. 허덕거리는 내가 움직일 힘이 모두 소진된 후에. 굳이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이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세계가 이 세계의 움직임에 따라 자극받고 위로받기도 하거든요.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나의 세계는 고립으로 무장하게 되겠지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공동체의 건강함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요. 이 책은 뉴스로 도배되는 세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를 말합니다. 물론 중심이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나를 지키려는 중심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갈 행위에 달려있기에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일부터. 감각을 부추기며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보이는 뉴미디어 시대에서 중심 잡은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능을 외면한 대가  (0) 2020.10.10
어쩌다가 사랑을 선택하다  (0) 2020.09.15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1) 2020.08.13
같이 모색하다  (0) 2020.08.12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2020.08.11
And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

이 책을 읽고 글을 쓴 후 4년이 됩니다. 지난 글들을 이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책에 관한 글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작업이죠. 

 

'책방, 눈 맞추다'는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중이고요. 언제까지일까.. 잘 모릅니다. 다만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가며 삶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정치가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합니다. 문제는 대통령 한 사람으로는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는 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사회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결국 시민입니다. 시민의식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치력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죠. 너무 더디게 지나는 사회제도에서 결국 희생은 다수의 시민이 감당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기에 개인이 스스로 삶을 변화하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희생으로 사회를 유지한다는 일은 끔찍한 세월아니었나요... 내 문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고통이 삶을 어지럽게 하니까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이라면 살아있음에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질 것 같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개인이 이루어낼 때 일권리에 합당한 판단이 가능하겠지요.

 

한 번 읽어보시죠. 2016년 박근혜정부 시절...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 것도 같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언론플레이로 혼란스러우니까요. 

 

 

 

당신의 정치 철학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선거 때면 내거는 공약은 지키기보다는 이기기 위한 정치전략으로 있다.  

 

순간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쉽게 저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생기는 정치 무관심은 아니었을까. 2012년 12월 19일 이후, 큼직한 사건 사고가 넘치는 가운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는 강대국의 힘겨루기를 위해 사드를 선택했다.

 

 

현 대통령의 치고 빠지기를 전략으로 말하기도 뭐하다. 여론이나 합의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갑작스러운 논란거리 하나 던져놓고 훌쩍 외유를 한다. 비교하는 거 안 하는 편인데 이 책을 보는 순간 겹치는 직함이 있어 별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가 보여준 삶은 특별하다. 그의 표정은 친근한 이웃이 웃으며  건네는 인사다.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이 세계를 잠시 황홀경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마음껏 상상하게 한다. 이 세계에 남길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선물했다.

 

그는 결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대통령이었다. 그의 평전을 읽어 보면 그의 삶이 보여주는 진정한 가치와 정치 철학이 고스란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왜 우리에겐 이런 지도자가 없는가?  

 

 

영적 지도자로서 교황 프란체스코는 현 존재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는다. 호세 무히카는 현대인에게 일상의 지도자라 하면 적절할까. '위대하다'라는 말보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에 좋은 정치가 이 사회를 바꾸는데 가장 빠른 선택의 길이라는 믿음이 저절로 생긴다.

 

리더십의 빈곤함에 찌든 한국사회에서 그의 삶을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지도층들이 많아진다면, 잘못된 사회구조로 발생하는 불안과 좌절이 줄어들 변화의 가능성은 분명하다. 굳이 선거 전략, 정치 전략이라 떠들지 않아도 말이다. 푸념 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 소수이지만 그런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 줄 대중의 움직임도 필수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보통사람이 일하며 사는 거리, 사회의 시선이 쉽게 외면당하는 현장으로 발걸음을 향한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정치인의 신념으로 움직이고 정치적 사명감을 다하려는 이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안방에 앉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는 없다. 오히려 안방의 텔레비전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아 왜곡된 정보를 쏟아낸다.

 

저널리즘이 실종된 나라, 그렇다고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언론 환경, 진보의 분열 따위로 투덜거리는 일도 할 만큼 했다. 이 망국으로 가는 역사의 혼란한 시간을 멈추게 할 힘이 있어야 하고, 정치만큼이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개인들도 그 책임을 함께 지고 가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호세 무히카는 그의 평전에서 말한다.

 

 “하나의 일관된 전략이 없으면, 그 집단은 살 수도 없고 숨 쉴 수도 없다.”

 

 

전략은 적중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전략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 명의 리더십이 작동될 수 없다면 진보의 결집이 필요하고 그것이 전략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혁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총과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이란 사고의 전환이다. 유교나 기독교도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투쟁에는 후퇴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힘을 유지한다는 것은 후퇴했다가 다시 모으고 조직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나간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호세 무히카의 말은 한국사회에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선거의 결과에 따른 치밀하고 비전의 어젠다를 재창출할 수 있는 전략가들이 힘을 합쳐야만 한다. 계파의 늪에서 언제까지 허우적거리며 책임 전가를 하려는 것일까. 현실의 벽 앞에 언제까지 무릎을 꿇고 국가의 미래를 팔아먹는 행태에 손가락질만 할 것인지 답답하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자신의 급여 대부분의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지만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우루과이는 현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퇴임 당시 무히카 대통령 지지율은 당선 때(52%) 보다 훨씬 높은 65%였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없는 가난한 대통령이지만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이다. 그는 이제 상원의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망각 속에서 공화국의 정신은 왜곡되고 붕괴하여 가고 있습니다. 공화국들은 봉건적 향수 때문인지 혹은 소비주의 문화 때문인지 ‘부유하게 살기’를 그들이 나아갈 방향으로 수용했고, 보통사람들의 삶과 꿈, 생활의 요구들을 외면해버렸습니다. 정부는 결국 자기 국민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동시대를 살고 있는데 정반대의 철학과 행동을 보여주는 대통령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 그 현실의 한계는 무엇일까.

 

그의 말대로 한 사회의 실패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정치가 실패하는 것은 삶을 부의 축적보다 우위에 두는 철학적 시야가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을 새겨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적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론이 편향적으로 알려주는 상황에서 알 권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정부의 정책 결정을 보면서 광장을 외면해야 할까?

유권자의 절반이 선택한 지도자가 제 길을 걷지 않는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이 물음표들이 느낌표가 될 수 있는 행위가 필요하다. 역사의 진보가 한국 사회를 비껴가도록 우리가 길을 내어 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2016.09.01. 글

'엉성이가 품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가 사랑을 선택하다  (0) 2020.09.15
프레임 벗어나기  (0) 2020.08.15
같이 모색하다  (0) 2020.08.12
무지개 사랑학-사랑의 기술  (0) 2020.08.11
Z차원의 사랑  (0) 2020.08.10
And
prev | 1 | next